사실은 일주일 전에 온 문자인데

문자를 보고서 예전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대학생 때는 한치 앞이 안보였던 것 같다.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알바하고, 끝나면 학교가서 꾸벅 꾸벅 졸다 오고 조금 쉬다가 또 일나가고. 남들은 스팩이 어쩌구 저쩌구 어학연수도 가고 즐길 것도 즐기고 하는것 같은데 나는 다람쥐 챗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소화하기도 벅찼다. 월급이 한달에 백만원 조금 넘었던 것 같은데 그 돈은 집안에 보태느라 결국 등록금도 못내고 대출만 점점 쌓여갔고, 그러다보니 학교에 친한 사람이라곤 한명도 없고 그냥 전공 수업시간에 지나치는 얼굴만 아는 사이

졸업앨범도 돈이 없어서 사진도 안찍고 사지도 않았네 ㅋ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엄마는 아들이 다른 교회 청년들과 친하게 지내기를 바랬다. 억지로 나를 끌고가고 그랬다.

그런데, 도저히 열등감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할 무렵, 몇 학번이세요? 하고 묻는 무심한 질문에도 내 마음엔 상처가 남았다. 덕분에 죽어라고 공부해서 서울의 2류대 정도는 입학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교회의 잘나신 명문대 다니는 분들이 본인들의 기준으로 무심하게 이야기를 하니 참 듣기가 거북했달까. 나는 차비가 없어서 버스도 못타고 다니고 밥 사먹을 돈이 아까워서 바나나 한송이로 한끼를 때우는데, 유학이 어쩌구 자동차가 어쩌구 딴나라 이야기를 하시니 참.

학교도 그랬다. 어떻게 어떻게 고등학교 때 뒤에서 10등했던걸 생각하면 정말 놀랍게도 서울의 2류대를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참... 적응이 안되는게. 반에서 상위권에는 항상 들었던 애들의 스타일이나 행동양식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달까. 같이 있으면서도 항상 이사람들하고 나는 안어울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이수 학점도 못채워서 한학기를 더 다니고, 그나마 성적은 개판.

나같은 사람을 누가 받아줄까 하며 아무데나 돈만 주면 가야지 하고 어떤 작은 회사 인턴 뽑는데 이력서를 내고, 거기가 되버려서(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박봉이었는데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ㅋㅋ) 기말고사 끝나는 날 부터 출근했었지. 


삶이 너무 피곤했다. 

만약 실제로 50의 고통을 받았다면, 내 자신이 생각하는 내 고통은 100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졸업식도, 아마 회사에 이야기 했으면 갈 수 있었겠지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무얼 배운 적도 없거니와 이 학교에 어떠한 소속감도 느끼지 못했어서.

나중에 졸업식에 불참했음을 부모님께 이야기 하니 꽤나 섭섭해 하셨는데, 나는 그걸 엄마 아버지는 나 학교 졸업하는데 하나도 보태준거 없으면서 졸업식은 가고 싶어? 라고 가슴에 못을 박았다. 싸가지 없는 놈이었다. 


이제와서 조금 후회를 한다.

그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던 것이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대단한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 함몰되어 나는 아무것도 못해, 하고 손 놓고 있지 않았다면, 그 안에서 무언가라도 시도해 봤다면 지금의 미래가 한참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졸업식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으나

...

가봐야 동문회에서 돈이나 내라 그러겠지.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민 하고 행동하면 이미 늦었다  (0) 2016.07.30
우렁각시  (0) 2016.03.20
결혼은 언제 하니?  (0) 2016.03.14
2016. 7. 28. 19:58 · 잡담 · RSS   
삑삑 삑삑의 소비생활 블로그
의 덧글이 달렸습니다 · 여닫기